한 달마다 바뀌는 큐레이터가 직접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
스피커·포스터 등 다양한 오브제로 감각적인 공간 조성
요즘 세대들에게 영화관은 작품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 자체를 즐기고 문화를 향유하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도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을 맞이해 보다 색다른 분위기를 지녔거나 남다른 가치를 전하고 있는 서울의 이색 영화관 3곳을 직접 경험해 봤다. 또한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당 공간만이 가진 강점도 알아봤다.<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팝업스토어의 성지'가 된 성수동의 한 골목에 30석 단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 영화관이 있다. 최신 개봉작이 아닌,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은 큐레이터가 직접 선정한 영화들을 스크린에 걸며 관객들과 '이야기의 장'을 만들고 있는 무비랜드다.
디자인 회사 모베러웍스가 2024년 2월에 오픈한 무비랜드는 영화관 겸 라디오 방송 등을 위한 미디어 공간으로, 서울 성수동에 위치해 있다. 모베러웍스는 2019년부터 영화와 디자인, 비즈니스 등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정보와 스토리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 'MoTV(모티비)'를 운영하며 이름을 알린 브랜드로, 현재 7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30석 단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무비랜드는 최신 개봉 영화가 아닌 한 달에 한 번 모베러웍스가 선정한 큐레이터가 직접 선택한 영화들을 즐길 수 있으며 관련 정보는 공식 SNS를 통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감독, 배우 박정민과 이제훈, 코미디언 문상훈, 디자인 듀오 신신, 뮤지션 김오키, 만화가 마영신 등이 참여했다.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14시부터 22시까지 운영 되고 있는 무비랜드는 하루에 한 편의 영화만을 상영하며 티켓 가격은 20000원이다. 잔여석에 한해 현장 예매가 가능하고, 상영 1시간 전부터 입장할 수 있으며 외부 음식은 반입 불가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큐레이터 'BRUTUS(브루터스)' 편집장 타지마 로가 선택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 토드 필립스의 '조커', 마이크 밀스의 '컴온 컴온' 등 총 4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더팩트> 취재진은 주말에 무비랜드에 방문해 '조커'를 관람했다.
1층 외부와 건물 내부 전체를 우드톤으로 인테리어해 따뜻한 느낌을 주는 무비랜드는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티켓 부스 스낵바 굿즈샵, 2층은 라운지와 화장실, 3층은 영화관이다. 티켓을 구매하고 굿즈샵을 구경하고 스낵바를 이용한 후, 2층에서 대기하다가 영화 상영 시간에 맞춰 3층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우선 취재진의 눈길을 끈 건 1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굿즈샵이다. 무비랜드의 로고와 슬로건이 담긴 셔츠와 에코백부터 스티커 머그컵 배지 등 여러 아이템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선택한 그래픽 문구를 개인 소장 물건이나 구매한 굿즈에다가 즉석에서 인쇄해 주는 유료 프린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었다.
2층에는 상영작들의 포스터부터 각종 스피커와 오브제들까지 구경할 수 있는 물품들이 가득해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무비랜드의 마스코트인 새 형상의 캐릭터 필름모조를 비롯한 각종 수작업 조형물, 미감과 사용감을 고려한 바 좌석과 소파 등 다양한 형태의 자리가 공간을 감각적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제작한 스타일리시한 포스터들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비랜드는 영화 상영 시작 시간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게 아닌, 머무는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비랜드 대표는 <더팩트>에 무비랜드를 "영화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소개하며 "저희끼리는 '이야기 주동자들'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는 핑계고 그 영화를 매개체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더 흥미를 느껴서 이런 공간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표는 'MoTV'를 언급하며 "이번 큐레이터가 왜 이 영화들을 골랐는지 등에 관한 내용들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며 "영화 자체도 재밌지만 영화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재밌지 않나. 큐레이터가 영화를 고른 이유를 알고 난 후에 영화를 보면 색다른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무비랜드의 큐레이터는 영화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고,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표는 "직업에 갇히지 않고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을 컨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로 2~30대분들이 무비랜드를 많이 찾아주고 있다. 편한 의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남자친구와 무비랜드를 찾은 20대 여성 A 씨는 "성수동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며 "30석이라 상영관의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사운드 등 여러 환경은 자주 가는 영화관과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A 열에 앉으면 목이 좀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고 솔직한 후기를 남겼다.
그러면서 A 씨는 "요즘 티켓 가격이 비싸서 영화관에 잘 안 간다는 인식이 있는데, 무비랜드는 티켓 가격이 2만 원이라 예매하면서도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다"면서도 "1층과 2층을 감각적으로 꾸며놔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전용 라운지를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막상 와보니 이러한 공간 체험도 티켓 가격에 포함된다면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무비랜드를 처음 방문했다는 30대 여성 B 씨는 "디테일하게 꾸며진 공간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금 더 여유롭게 와서 구석구석 다시 한번 구경하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다. 20대 남성 C 씨는 "유튜브에서 큐레이터가 해당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듣고 영화를 봤다"며 "이미 봤던 작품임에도 이전과 다른 감상이었다. 거리상 자주는 못 오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친구와 영화를 보러왔다는 20대 여성 D 씨는 "성수동은 영화관도 힙한 느낌이다(웃음). 입구부터 상영관까지 오렌지색과 우드톤이라서 건물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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