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후보지 선정 이후 들뜬 마을 분위기
"생활 좋아질 것" 기대 "돌아오기 힘들어" 우려
[더팩트ㅣ황지향·이다빈 기자] 폭설이 쏟아진 개미마을의 아스팔트 도로와 지붕, 계단 등은 약 20cm 눈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개미마을로 가는 유일한 마을버스 서대문 07번을 타고 종점에서 하차한 70대 A 씨는 "개미마을 재개발하면 좋지. 우리가 여기 꼭대기 올라와 살면서 무릎 수술하고 힘들어 죽겠는데"라고 했다. 경로당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 연신 숨을 고르고 쉬어 가던 A 씨는 "개미마을에 사는 건 항상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개미마을은 1960년대 도시빈민들에 의해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으로 저소득층과 노인 등 소외계층 밀집지역이다. 모양도, 높이도 제각각인 좁은 시멘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슬레이트 지붕의 집을 마주할 수 있다. 혼자 사는 개미마을 주민 한 명을 담당한다는 요양보호사 B 씨는 허리를 숙인 채 계단 위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 나르기 반복하며 길을 트고 있었다.
개미마을은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집집마다 연탄이나 기름 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연탄을 60여 장씩 쌓아둔 집이 곳곳에 보였다. 요즘은 보기 어려운 외부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도 눈에 띄었다.
개미마을에서 36년째 살고 있다는 김종남(78) 씨는 "돈 없이 시골에서 서울로 와서 살 수가 없으니 집세가 싼 개미마을에 오게 됐다"며 "인왕산 가까이 높은 곳에 있어 겨울에는 눈이 잘 녹지 않고 아랫동네보다 더 춥다"고 했다. 이어 "함석판 지붕이 연탄하고 아주 상극이라 (지붕이) 다 녹아버려 계속 고쳐서 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던 개미마을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개미마을·문화마을·홍제4재개발 해제구역(홍제4정비예정구역) 일대 11만9733㎡가 지난해 10월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것이다. 서울시는 주민 안전을 위해 노후불량주거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재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신통기획은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가 개입해 사업성과 공공성을 적절하게 결합한 정비계획안을 짜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다.
곳곳에선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선정에 따른 기대감이 엿보였다. 문화마을에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등이 내건 '신속통합기획주택 재개발 후보지 확정'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신통기획 재개발 사업 동의서를 접수하는 포스터도 전봇대에 붙어있었다.
주민들도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여 있었다. 주민들은 "개미마을에는 노인들이 많은데 연탄을 때고 집을 계속 수리하면서 사는 게 힘들다"며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선정에 대체로 동의했다.
개미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권용원(76) 씨는 "재개발하면 주민들이 분명히 덕을 본다"며 "개미마을에 땅이나 건물, 집이 있는 사람은 입주권을 가질 수도 있고 자기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가면 좌우지간 그냥 사는 것보다 생활이 달라지고 좋아질 거 아니냐"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권 씨는 '개미마을추진위원회'라고 적힌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다만 재개발 무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 씨는 "재개발이라는 게 할 일이 많다"며 "빠르면 8년, 늦으면 12~13년이 걸리는데 중간에 무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미마을을 포함한 홍제동 9-81 일대는 보통 5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많아 개발해야 한다는 주민들 요구가 있었다. 지난 2006년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된 이후 다양한 개발사업이 시도됐지만 낮은 사업성,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신통기획 재개발은 △후보지 지정을 위한 주민 신청 △구청 및 서울시 검토 후 후보지 선정 △(후보지 선정 시)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구성 및 승인 △조합설립 인가 △시공사 선정 절차를 거쳐 진행된다. 주민 신청 시 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고 30% 이상 반대 시 철회해야 한다.
이계열(71) 문화타운 추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보상 논의 단계는 아니고 2025년에 공시지가 전수조사와 업체 선정, 용역 발표가 이뤄져야 한다"며 "공시지가 공개되면 재산 가치가 달라 불만이 생기거나 주민들 생각이 달라질 수 있고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고비인데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재개발이 되더라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개미마을에 돌아오기 힘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주민은 "개미마을은 땅을 공동불하를 받아서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보상금을) 탈 사람도 있겠지만, 값을 다 쳐줘도 여기를 떠나 살 수 있는 재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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