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기금 재정 건전성 ‘악화일로’…회수율 30% 수준
법인 폐업 시 회수 불가…“대지급금 지급 기준 강화 필요”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내수침체, 미국 관세 조치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임금체불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대지급금 지급범위 또는 한도 확대에 관한 필요성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출만 확대할 경우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와 재정악화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정부가 제도 개편을 위한 연구 공모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대지급금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연구’ 용역을 발주해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입찰 공고안을 보면 사업예산은 총 6000만원으로 연구 기간은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다.
고용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규모는 지난 2년 새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은 1조3000억원대를 유지했지만, 2023년부터 1조7845억원으로 늘더니 지난해는 2조원을 돌파(2조448억원)하며 급증.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체불근로자 수도 23만7005명에서 28만3212명으로 약 20% 증가했다.
임금체불액이 빠르게 늘자 사업주가 도산·파산 등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할 때 국가가 대신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대지급금’ 지출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대지급금 지출액은 2021년 5466억원에서 작년 7242억원으로 3년간 1776억원으로 늘었다.
임금체불액 증가 속도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대지급금 청산율도 2023년 39.5%에서 지난해 35.4%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대지급금 지급범위 또는 한도를 확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8일 박홍배 민주당 의원 등은 대지급금 보장 범위를 기존 3개월에서 3년으로 늘리는 ‘임금채권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대지급금 확대는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겨 되레 임금체불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해도 나라에서 대신 지급하기 때문에 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지급금 재원인 ‘임금채권보장기금(임채기금)’은 6000억원대 수준에서 지난 2년간 절반으로 급감해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했다.
이 같은 악화 원인으론 2021년 ‘간이대지급금’ 제도가 꼽힌다. 간이대지급금은 고용부에 진정사건을 제기해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을 확인하면 2주내로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간이 형태로 이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정부는 대지급금 지원 확대 목소리에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정부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궁극적으로 임금 지급의무는 사업주한테 있는 만큼 대지급금 의존도를 떨어뜨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제도를 위해 회수율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문제는 임채기금이 재정이 심각한 수준인데 경기가 어려워 사업주 부담을 요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내수침체, 미국발 관세 리스크 등이 겹친 탓에 정부가 체불사업주로부터 임금을 받아내는 회수율은 약 30%(누적)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도 인상 등에 따른 부작용 및 추가소요 예산 추계 △해외 유사 제도 지원수준 △제도 간 관계 설정 및 활성화 방안 △사업주 책임성 강화를 위한 책임요율제 도입 △현장조사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책임요율제(현행 임채기금 사업주 보수총액 0.06% 부담)는 임금체불이 자주 발생하는 산업군 또는 대지급금 수령 비율이 높은 사업장에 부담금 요율을 차등 적용(일부 인상)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주 부담을 최소화하고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체불 피해에 대해 응당 사용자의 책무를 국가가 대신하는 게 맞느냐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약자 보호를 위한 사회적 비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체불 해소를 위해 사용자의 경제적 책임을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잘 돼 있는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창근 노동법률사무소 필립 대표노무사는 "대지급금 확대는 찬성하지만, 문제는 환수율인데 법인 대상으로 대위변제 시 법인이 폐업할 경우 환수가 안된다"며 "현행 제도의 맹점은 사업주가 임의로 짜고 고용부가 인정을 해주면 부정 수급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단속하기도 힘든 데다가 회수 기간을 연장해도 사업주가 자포자기한 상황이라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어 "되레 퇴직금 적립률이 일정 기간 내(3년) 낮다면 책임요율을 인상하는 방안이나 법인 대지급금 지급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기금 재정 건정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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