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루시드폴, 디스토피아에서 웃으며 부른 '또 다른 곳'


디스토피아 극복할 희망과 연대의 9곡 수록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 세계 각국 뮤지션과 협업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7일 열한 번째 정규앨범 또 다른 곳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을 비롯해 총 9곡이 수록됐다./안테나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7일 열한 번째 정규앨범 '또 다른 곳'을 발매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을 비롯해 총 9곡이 수록됐다./안테나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직업이 많은 아티스트다. 일단 28년 동안 활약한 뮤지션이며 작가 화학자 농부의 타이틀도 지니고 있다.

이에 문득 루시드폴 스스로는 자신의 직업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뮤지션'이라는 답이 나올 것은 예상했고 예상대로 루시드폴은 별 고민 없이 "당연히 뮤지션"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 뒤 이어진 루시드폴의 부연은 조금 생각에 들게 했다.

루시드폴은 "작가는 아니다. 그저 글을 옮겼을 뿐이지 작가라고 하기 어렵다. 연구원도 전 연구원이다. 다만 현업은 농부긴 하지만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1975년생인 루시드폴은 올해로 50대에 접어들었다.

루시드폴은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유해졌다. 예전에 나는 날카롭고 나만 보는 사람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주변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나 자신에게 가혹한 건 마찬가지인데 (주변의 일로) 별로 거슬리는 것은 없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나이 듦의 장점을 말했다.

반대로 단점에 대해서 그는 "예전에는 정말 전혀 그런 적이 없는데 요새는 가끔 '내가 음악을 그만둘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이제는 호기심을 부려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 기존에 하던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에너지를 조금씩 더 모아야 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루시드폴의 이 마음가짐은 7일 발매된 그의 열한 번째 정규앨범 '또 다른 곳'에도 적용됐다. 실제로 그는 이번 앨범을 위해 쭉 이어오던 농업도 뒤로 미뤄둘 만큼 음악 작업에 몰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더팩트>는 7일 안테나 사옥에서 루시드폴과 만나 에너지를 모아 만든 '또 다른 곳'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단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을 포함해 '또 다른 곳'에 수록된 9곡의 곡은 디스토피아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노래를 이어가는 한 뮤지션의 이야기다.

루시드폴은 "디스토피아에서 노래하는데 시선은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라며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디스토피아지만 어쩌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음악가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현실이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루시드폴은 "요즘에는 세상이 지금보다 나빠질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나는 농사를 지으니까 기후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슈가 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여러 사건사고로 난리가 났다. 전 지구적으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앨범 타이틀이 '또 다른 곳'으로 정해진 데에도 이런 이유가 자리한다.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은 지리적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것이 첫 번째고 속세가 아닌 다른 세상의 의미가 두 번째"라며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을 많이 한다.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약간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을 디스토피아지만 어쩌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음악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안테나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을 디스토피아지만 어쩌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음악가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안테나

물론 어두운 세상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앨범인 만큼 곡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타이틀곡 '꽃이 된 사람'은 오히려 신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쾌하고 비트감이 있는 곡이다.

루시드폴은 "타이틀곡은 내가 정하지 않고 회사에 맡긴다"며 "음악 작업할 때는 파묻혀서 사니까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또 듣는 사람이 어떤 음악을 좋아할지는 회사에서 잘 알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꽃이 된 사람'은 가장 늦게 작업을 마친 곡이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어쩌면 이 곡이 타이틀곡이 될 수도 있겠다고 싶었다"며 "정말로 회사에서도 이 곡을 타이틀로 하겠다고 했는데 더블 체크를 해보고 싶어서 사내투표를 요청했다. 40명이 투표를 했는데 38명이 '꽃이 된 사람'을 타이틀로 썼다. 그럼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타이틀곡으로 정했다"고 선정 과정의 에피소드를 밝혔다.

사실 '꽃이 된 사람'은 완성까지 오래 걸리지 않은 곡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번 앨범 '또 다른 곳'이 추구하는 또 다른 목적이 확실하게 담겨 있다.

루시드폴은 "'아마추어 시절처럼 스트레이트한 곡을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책장에서 '식물을 너무 사랑해서 식물이 됐습니다'라는 문장을 봤다"며 "그리고 작업을 시작해 한 시간 만에 만든 곡이다. 가사도 단순하고 변화의 폭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곡 자체는 빠르게 완성됐지만 편곡과 마스터링까지 마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루시드폴은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시쿠 베르나르지스(Chico Bernardes)와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돼 프로듀싱을 이 친구에게 맡겼다"며 "'꽃이 된 사람'이 약간 한국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브라질 사람이 프로듀싱을 맡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고 당시를 알렸다.

이어 그는 "시쿠에게 노래의 정서와 거친 느낌만 잘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거칠게 나오기는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외의 결과물에는 만족했다. 루시드폴은 "악기의 질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내가 최소한으로 편집하고 오랜만에 일렉 기타를 직접 치는 정도로 작업을 마쳤다"며 "미선이 활동할 때 느낌으로 기타를 쳤다. 비트있게 만들겠다고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시쿠가 만들었던 것과 막연하게 연결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루시드폴이 브라질의 뮤지션 시쿠와 작업은 한 것은 앨범 타이틀에 담긴 첫 번째 의미인 '지리적으로 다른 곳'에 해당한다. 시쿠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곳'에는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의 여러 국가의 뮤지션이 작업에 참여했다.

루시드폴은 "나는 우주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나'라는 우주,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주, 나와 '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주다"라며 "두 번째 우주는 가족 친구 지인 등 직접 나와 만나고 마주치는 관계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우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또 그는 "두 번째 우주가 너무 포화돼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와 연결돼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연결돼 있는 세 번째 우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너무 과잉된 에너지를 조금 분산시키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에는 지리적으로 다른 위치와 속세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또 다른 곳에는 타국의 뮤지션이 대거 참여했다./안테나 루시드폴은 '또 다른 곳'에는 '지리적으로 다른 위치'와 '속세를 벗어난 새로운 세계'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또 다른 곳'에는 타국의 뮤지션이 대거 참여했다./안테나

그리고 이 생각이야 말로 '또 다른 곳'의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다.

루시드폴은 "그래서 세 번째는 같이 뭔가를 꿈꾸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스럽게 희망과 연대의 에너지를 찾게 됐다"며 "음악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었다"고 앨범에 담긴 의도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루시드폴은 현실에서도 이 희망의 힘을 믿고 있다.

루시드폴은 "최근에 '굿 뉴스'라는 채널을 팔로우했다. 좋은 소식만 전하는 뉴스 채널이다"라며 "당연히 나와 내 주변에 기분 좋은 일도 많다. 그러니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며 희망과 연대가 더 넓게 이어지길 바랐다.

laugardagr@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 추천 2
  • 댓글 2


 

회사 소개 | 서비스 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의견보내기 | 제휴&광고

사업자 : (주)더팩트|대표 : 김상규
통신판매업신고 : 2006-01232|사업자등록번호 : 104-81-76081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189 20층 (상암동,중소기업DMC타워)
fannstar@tf.co.kr|고객센터 02-3151-9425

Copyright@팬앤스타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