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안성기가 5일 오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인 배우로, 69년간 대중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안성기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 병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맞이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진 후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6일간 투병해왔다.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안성기는 연기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성실함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해 온 분"이라며 "그의 연기는 사람과 삶을 향해 있었고, 수많은 작품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해주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안성기는 1952년 1월 1일 대구에서 태어나 5세에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10대에는 학업에 집중했으나, 20대 후반에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80년대 대표 감독들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입지를 다졌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이 있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계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일찍 떠나게 되어 애석하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관객들과 함께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는 '투캅스'(1993)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며, 2000년대에는 '실미도'(2003)와 '라디오스타'(2006) 등 굵직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생전 약 150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다양한 얼굴을 스크린에 남겼다.
안성기는 1980년 '바람불어 좋은 날'로 대종상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연기상 등을 40여 차례 수상했다.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한국 영화계를 위한 일이라면 항상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면에서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릴레이 1인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의 인품 또한 존경받았다. 반세기 이상 활동하며 작은 구설 하나 없었고, 선후배들의 경조사를 가장 먼저 챙겼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으나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하여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는 마지막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3년 전으로, 2023년 4월 '4·19 민주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9월 정지영 감독의 40주년 기념 회고전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건강이 악화되며 외출을 삼갔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국민에게 희망과 위로, 그리고 따뜻한 행복을 전해준 그의 작품 속 진정성 있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밝은 빛이 되어 주었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안성기의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하며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명예장례위원장은 원로배우 신영균이 맡고, 배창호 감독,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신언식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직무대행,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 4인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9일 오전 6시로 예정되어 있다.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이전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