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바다가 육지였다면 걸어서라도 갔을텐데"
가수 남진과 함께 '호남지역 대표' 스타 가수 각광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가수 조미미는 육지를 그리워하는 도서지역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대표곡 '바다가 육지라면' 외에도 '서귀포를 아시나요' '단골손님' '서산 갯마을' '해지는 섬포구' '연락선' 등 섬과 바다를 소재로한 명곡들을 남겼다.
그의 가요계 진출은 목포여고를 졸업한 뒤 65년 동아방송이 주최한 가요백일장에 참가해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최종 선발되면서다. 가요제 입상과 함께 실력을 인정 받으며 그해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했다.

조미미는 후덕한 외모와 맑은 목소리 등으로 이미자를 뒤잇는 인기 여가수로 각광받았다. 60년대 우리 가요계에 남자가수로는 남진 나훈아를 꼽았고, 여가수로는 이미자 조미미를 꼽았을 만큼 대중적 사랑을 크게 받았다. 남진과 함께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스타이기도 했다.
그의 고향인 영광에는 조미미를 기리는 노래비가 있다. 영광군이 2022년 6월 백수해안도로 노을전시관 앞에 세웠다. 너비 5.4m, 높이 3m 규모의 노래비에는 대표곡인 '바다가 육지라면'의 노래 가사와 포토존 및 뮤직박스가 포함돼 있다.

'얼마나 멀고 먼 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진 않을 것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가사 1절)
작사가 정귀문이 쓴 이 곡(이인권 작곡)은 자신의 고향 경상북도 월성군 감포읍 나정항에 깃든 사연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626~681) 암이 있는 바다 마을로, 용왕으로 변신해 신라를 지켜주고 있다는 전설이 깃든 바닷가 근처다.
연락을 취하고 싶어도 연락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노래한 곡이다. 차라리 바다가 육지였다면 걸어서라도 갔을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하게 와닿는다. 통신과 운송수단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애틋함이 스며있다.
정재은 강혜연 홍지윤 등 후배 여가수들이 리메이크곡 또는 커버송으로 많이 불러 세상을 떠난 조미미에 대한 그리움을 더해주고 있다. 히트 당시 이 곡은 공교롭게나 가수 남진의 노래 '가슴아프게'(원곡 이름은 '낙도가는 연락선')와 연결지어지곤 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으로 시작하는 '가슴아프게'(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역시 바다를 사이에 둔 연인간 이별 사연이다. 남진과는 동향인데다 데뷔 시기도 비슷하다. 둘 사이 염문설은 지금도 가요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남진은 68년 해병대 입대와 월남파병을 자원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미미는 파월장병위문공연단 일원으로 월남을 찾았다. 남진이 전역하고 귀국하던 시기에 조미미가 부른 노래 '먼 데서 오신 손님'도 염문설을 부추겼다.
조미미의 본명은 조미자다. 생전 서울 평강제일교회에서 평생을 평신도로 살았으며, 가수 남진은 이 교회의 장로였다. 남편은 재일동포 야스다 에이키츠(永吉)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고, 그 중 큰 사위는 인도네시아인 사업가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 꾸준한 건강관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2년 8월 체중감량 문제로 병원에 갔다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다가, 본인 요청으로 오류동 자택으로 귀가해 3일 뒤인 9월9일 사망했다.
암 진단 후 불과 한달만에 세상을 떠나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대한가수협회장이었던 태진아는 "늘 조용했지만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줬던 마음이 따뜻한 선배였다"면서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만 흘렀다"며 고인의 죽음을 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