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공감되는 부분 있어…"자질구레한 아이러니함이 있는 영화"
박찬욱 감독은 영화 '어쩔수가없다' 개봉을 기념해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CJ ENM[더팩트|박지윤 기자] 박찬욱 감독 스스로 "필생의 프로젝트"라고 자신한 신작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까지 그 어느 작품보다 오래 걸린 영화인 만큼, 박 감독의 시선에서 '어쩔수가없다'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들어봤다.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 개봉을 앞둔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내외 영화제와 언론배급시사회 등을 통해 수많은 취재진과 만나고 있는 그는 "시간도 없고 피곤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리뷰나 댓글을 보면 상처받을 테니 이를 보지 않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24일 스크린에 걸린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두 자식을 지키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 'THE AX(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앞서 "소설을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거의 20년이 돼 간다"고 밝혔던 박 감독은 이날 재밌게 읽은 글을 영어 영화로 기획했다가 한국 영화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각색을 시작한 2009년과 판권을 확보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그는 소박한 씨앗에서 꽃을 피우듯, 원작에 없는 '만수는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요소로부터 출발했던 때를 회상하면서 말이다.
"원예와 분재에 몰두하고 온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만수가 사람을 죽이고 토막을 내는 등의 잔인한 행위를 하는, 캐릭터를 갉아먹는 비유로 발전해 나가는 가지를 뻗어나갔어요. 처음에 캐나다 작가를 영입해서 대사 다듬기 작업을 함께 했는데 죽이 잘 맞아서 그 이상의 작업도 했죠. 그때 미국 역사를 테마로 한 무도회 장면이 생겼어요. 이후 제지 산업을 구체화했고 한국 영화로 결정한 이후에 범모(이성민 분)의 아내 아라(염혜란 분)와 관련된 부분과 AI(인공지능)와 관련된 것들이 추가됐죠."
24일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와 두 자식을 지키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CJ ENM이번 작품은 소설을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필생의 프로젝트'라고 언급할 만큼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영화다. 그렇기에 다른 영화들을 선보이면서도 '어쩔수가없다'를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가 궁금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확하게 어떤 지점에 강하게 매료됐는지 알고 싶었다.
"인물들이 종이를 만드는 데 목숨을 거는데 저도 '영화가 삶 자체'라고 말하는 게 어리석지만 그런 지점에서 공감할 수 있었어요. 또 재밌었던 건 만수가 실직자가 되고 남성성을 잃어버렸다가 살인할수록 자신감을 회복해요. 아들이 친 사고를 해결하면서 굉장한 자신감과 능숙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방에서 발견한 담배를 주면서 '네가 버려'라고도 해요. 멋진 교육인 것처럼요. 하지만 결국 큰 재앙을 불러오잖아요. 도취해서 하는 것들이 결국 제 무덤을 파는 일인게 좋아서 그 부분을 강조해서 각색했죠."
원작의 제목은 도끼를 뜻하는 'THE AX'이고, 박찬욱 감독은 소설이 재출간될 때 추천사를 쓰면서 '이걸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모가지'라고 해야겠다'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 '도끼'나 '모가지'가 아닌 '어쩔수가없다'라는 제목으로 스크린에 건 이유는 무엇일까.
"'도끼'가 부르기 쉽고 좋았지만 영어로 해고를 뜻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모가지'는 주변에서 기겁했고요. 마지막에 '어쩔수가없다'와 '가을에 할 일'이 남았는데 계절의 변화가 중요했고 극 중에서 업계에서 제일 큰 회사도 구조조정이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재취업에 성공해야된다고 하기 때문에 '가을에 할 일'이 어울릴 것 같았어요. 만수가 하는 범죄 행위와 대조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시적인 느낌이라서 재밌었는데 주변에서 말려서 '어쩔수가없다'가 됐죠."
이와 함께 제목을 띄어 쓰지 않는 이유로는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라기보다 버릇처럼 남발하는 감탄사의 뉘앙스를 풍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왼쪽에서 두 번째)은 "늘 잠재적인 고용 불안 상태다. 영화도 연달아 2~3개 잘 안되면 실업상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남의 이야기라고 절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윤석 기자'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으로 초호화 캐스팅 라인업을 구축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 가운데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을 맡아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손예진과 범모의 아내 아라로 분한 염혜란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꺼내며 적은 분량에도 막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에 박 감독은 "염혜란은 디렉터스컷에서 처음 봤는데 너무 섹시하고 사람이 멋있고 스피치도 너무 잘해서 반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손예진은 '클래식'과 '비밀은 없다' 등에서 훌륭한 연기를 했기에 섬세한 표현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각본을 읽을 때 비중이 작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출연을) 할까 걱정했죠. 손예진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할건데 역할이 작은 만큼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한테 '왜 했어?'라고 묻는 소리를 안 듣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약속을 지키느라 한 줄이라도 더 재밌게 고치려고 했죠(웃음)."
'공동경비구역 JSA'(2000)과 '쓰리, 몬스터'(2004) 이후 이번 작품으로 세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된 이병헌도 언급했다. 박 감독은 "그동안 자주 만났는데 '작품 한 번 해야죠'라고 할 때마다 농담으로 '빨리 늙어라'고 했다"며 "제가 이 작품을 예전에 만들었다면 이병헌과 못 만났을 것 같다. 너무 젊고 백인도 아니니까.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 이유를 묻는다면 '이병헌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박찬욱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만큼, 직장인들처럼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위치와 거리가 다소 멀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저도 감독이 되기 전에 잠깐 회사 생활을 했고 지금 직장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늘 잠재적인 고용 불안 상태예요. 영화도 연달아 2~3개 잘 안되면 실업 상태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남의 이야기라고 절대 느껴지지 않아요."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가족을 지킨답시고 하는 일이 결국 가족을 파괴하는, 헛수고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헛수고다. 만수가 인간 경쟁자를 제거했더니 또 AI를 맞닥뜨리게 되는 자질구레한 아이러니함이 있는 영화"라고 바라봤다. /CJ ENM그런가 하면 일각에서는 계급 문제를 다루고 블랙코미디 요소가 가미됐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비슷하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이를 들은 박 감독은 "'어쩔수가없다'는 중산층의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끼리 죽이고 싸워야되는 서글픈 일을 다룬다. 불쌍하다기보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했다.
"물론 크게 보면 계급 문제를 다루고 블랙코미디 요소가 있어서 외국인들은 비슷하게 볼 수 있지만 저는 언제나 부조리함과 아이러니 그리고 패러독스를 좋아했어요. 만수가 가족을 지킨답시고 하는 일이 결국 가족을 파괴하는, 헛수고를 하잖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헛수고거든요. 만수가 인간 경쟁자를 제거했더니 또 AI를 맞닥뜨리게 되는 자질구레한 아이러니함이 있죠."
끝으로 박찬욱 감독은 "'어쩔수가없다'는 관객들이 만수를 동정했다가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왔다 갔다 하는 진자운동이 핵심인 작품"이라며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 위해서 예민하게 고려했다"고 관객들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봤으면 하는지에 관해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만수가 관자놀이를 두드리면서 '어쩔수가없다'라고 되뇌는 장면이 나오는데 노력을 하면 할수록 관객들은 '과연 그럴까?'라는 질문을 하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만수의 행동과 심정을 어디까지 이해할지가 의심스러운 문제였고 이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물론 극단적인 서사를 넣어서 만수를 이해할 수 있게 할 수 있지만 이는 그런 영화가 아니에요. 때로는 만수에게 끌려 들어가서 응원하다가 바보짓을 하면 안타까워하다가도 더 이상 나쁜 짓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여러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jiyoon-1031@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이전 뉴스







